1939년 세계 2차대전이 일어나기 바로 전, 스페인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의 지식인들이 모여들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조지 오웰 같은 작가들이 자신의 나라도 아닌 스페인까지 와서 피비린내로 얼룩진 스페인 내전에 총을 들고 참전했던 것인데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며 처참했던 내전 중 하나였던 스페인 내전 (1936.7 ~ 1939.4).
제 기억에는 학생때 이 내전에 대해 별로 배운 바도 없었던 것 같고,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봐도 치열했던 좌우익 대립전이나 흑백논리의 관점으로 바라 본 전쟁 이야기, 또는 이를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좌우익 대립이나 흑백논리로 전쟁을 바라보게 되면 전쟁은 마치 정당화될 수 있는 필요악처럼 여겨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Fuck the Revolution 을 부르짖는 보노가 생각나기도 합니다만, 수많은 사람이 무고하게 죽어나가는데, 혁명이나 전쟁이 그 어떤 명분으로라도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에서도 보면 스페인 내전을 좌우익의 대립 관점보다는 스페인을 공포로 몰고 갔던 파시스트 프랑코 세력 제거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모였지만, 각기 다른 사상적 기반의 민병대끼리 대립하는 갈등과 분열을 한 영국 청년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로 그리고 있기도 하죠.
그냥 판타지 영화인 줄로만 알아 개봉 당시 별 관심이 없었다가, 최근 DVD 를 통해 보게 된 멕시코 영화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한 <판의 미로> (Pan's Labyrinth : 2006).

이렇게까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길 것이라고는 보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너무 마음이 아파 한동안 몹시 괴로왔습니다. 이렇게 잔인한 영화가 판타지 영화라구요?... 천만에요. (이 영화의 홍보와 마케팅을 담당한 국내 담당자에게 야유를 보내고 싶군요.)
극중 오필리아가 가지고 다니던 Book of Crossroads 책 모양의 DVD 자켓이나 일러스트레이션이 담긴 책자 등 신경쓴 흔적이 보이는 DVD 입니다. 특히 감독의 음성해설과 메이킹 필름도 상당히 유용한 자료를 제공해 줍니다.
2006년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문 후보에도 올랐지만, 수상은 <타인의 삶>이 했죠. 심사하기 정말 난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타인의 삶>은 뭉클한 감동을 주었지만, <판의 미로>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참혹하기 그지 없고, 피와 죽음의 잔인한 폭력이 넘치는 전쟁이라는 현실 세계에서 요정과 마법, 그리고 판이 사는 15세 소녀의 오필리아의 환상의 세계는 오필리아가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댈 수밖에 없었던 위안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두려운 존재를 상대할 용기와 탐스런 음식을 참아낼 인내와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릴 수 있는 희생을 판은 요구하죠.
이 영화가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팠던 것은 오필리아가 환상의 세계에서 이루어 낸
그 용기와 인내와 희생이 현실세계에서는 그냥... 그냥... 허무하고 잔인한 슬픔이더군요...

파시스트이 벌인 참혹한 전쟁을 가만히 두고 본 유럽 열강들과 미국, (독일과 이탈리아, 소련은 오히려 전쟁을 부추기고 물량지원까지 했죠) 수많은 무고한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또 죽이는 전쟁을 흑백논리나 좌우대립 따위로 바라보며 사상을 합리화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용기는 짓밟혔고, 희생은 헛되었으며, 정의는 패배하고, 정신은 폭력에 꺾여버린 스페인 내전은 참전한 많은 젊은이들과 전세계의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은 많은 이들에게 큰 패배감과 상실감을 안겨 준 비극의 전쟁이었습니다. 오필리아의 환상의 세계에서나 보상받을 수 있는...
그 어떤 전쟁이라도 사람이 흘리는 피를 정당화할 수 없으며, 가장 잔인한 자기기만일 뿐이며,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인류 최악의 죄악일 뿐입니다. 물론 프랑코나 히틀러같은 독재 세력에 간디처럼 비폭력으로만 저항하라는 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는 옳은 일을 하기 위한 폭력이나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인류의 비극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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