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을 고열과 편도선에 시달리며 정신 못차리고 땀 뻘뻘 흘리며 내리 잠만 자다 일어나서 보니 여전히 세상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머리가 핑핑 돈다. 나쁜 놈은 나쁜 놈답게 더 나쁜 놈이 되고 있지만 좋은 놈은 좋은 놈답게 더 좋은 놈이 되지는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익선(善益善)은 여전히 없는 상태에서 악익악(惡益惡)만 더해간다.
<반지의 제왕>이 다시 보고 싶어진다.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께 나는 늘 이야기한다.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지금 대통령은 악마라니까요. 천안함이요? 그걸 믿어요? 차라리 부처님을 믿으세요." 물론 어머니는 원래부터 현 정권과 여당을 싫어하신다.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를 수시로 해야만 하는 이유는 어머니가 자주 보는 방송으로부터 왜곡된 정보가 끊임없이 전달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A 는 B 이고 B 는 C 이므로 A 는 C 가 아니다,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수십 년의 경험으로 볼 때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보고 싶은 영상을 보여 주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뉴스를 보면서 안심한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 선입견과 편견을 깨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보다 어렵겠지.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 나는 얼마나 철학 교육을 못 받았는지 참 화가 난다. 그 소중한 나의 십대는 전두환이 지배했다. 그리고 그 때 주입된 선입견과 편견을 깨는 데 도대체 지금 몇 십년이 소요되고 있는가 말이지. 악한 정권이 어리석은 학생을 키워낸다. 내가 고딩 졸업할 때 만약 프랑스처럼 다음과 같은 바칼로레아 같은 시험을 치루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난 종종 상상한다. 부질없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 시험문제
1장 인간(Human)
Q1-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Q2-꿈은 필요한가?
Q3-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Q4-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Q5-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Q6-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Q7-행복은 단지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인가?
Q8-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Q9-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
Q10-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Q11-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2장 인문학(Humanities)
Q1-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Q2-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Q3-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Q4-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Q5-역사학자가 기억력만 의존해도 좋은가?
Q6-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Q7-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Q8-재화만이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Q9-인문학은 인간을 예견 가능한 존재로 파악하는가?
Q10-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3장 예술(Arts)
Q1-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Q2-예술없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Q3-예술 작품의 복재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Q4-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가?
Q5-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4장 과학(Sciences)
Q1-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Q2-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Q3-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Q4-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Q5-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Q6-이론의 가치는 실제적 효용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
Q7-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Q8-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Q9-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Q10-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
Q11-자연을 모델로 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합한가?
5장 정치와 권리(Politics&Rights)
Q1-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Q2-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Q3-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Q4-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Q5-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Q6-노동은 욕구 충족의 수단에 불구한가?
Q7-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Q8-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Q9-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나?
Q10-유토피아는 한낱 꿈일 뿐인가?
Q11-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Q12-어디에서 정신의 자유를 알아차릴 수 있나?
Q13-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Q14-다름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Q15-노동은 종속적일 따름인가?
Q16-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나?
6장 윤리(Ethics)
Q1-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Q2-우리는 좋다고 하는 것만을 바라는가?
Q3-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Q4-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
Q5-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Q6-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를 말해 주는가?
Q7-우리는 정념을 찬양할 수 있는가?
Q8-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Q9-정열은 우리의 의무 이행을 방해하는가?
Q10-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Q11-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
요즘 이 블로그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한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몇 년 전에 비해서도 음악과 기타에 관심있는 사람은 확 줄어 보이는데 차라리 한 권의 책을 더 읽고 한 편의 영화를 더 보고 글이나 남기지 뭐하러 음악이 어쩌구 기타가 저쩌구 이 따위 이야기를 쓰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허공을 울리는 메아리같다.
정말로 이 블로그를 가치있게 활용하고자 한다면 십대들을 위한 철학 입문서인 <소피의 세계>처럼 내가 십대 때 받지 못한 교육에 대한 설움을 여기서 풀어대는 것이 현명한 일일 수도 있고, 아니면 능력이 된다면 음악을 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나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 아닌가 싶다.
이틀 동안 끙끙 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이런 저런 꿈을 꾸다 보니, 한번 아파야 한번 성숙하는 것을 체험하는 기분이다. 하여간 이 블로그를 어떻게 할지 고민을 좀 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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